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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서결(書訣) 중 상체의 움직임에 대하여 본문

서예/들풀의 서예론

추사 서결(書訣) 중 상체의 움직임에 대하여

Dr. Jo 2016. 12. 1. 13:25

서예 교본을 보면 집필법이나 영자팔법과 같은 기초 사항이 서두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붓을 잡는 법, 붓을 움직이는 법에 앞서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운동을 하던지 악기를 연주하던지 몸 전체의 자세를 바르게 잡아주지 않으면 실력의 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더러 습관이 되면 후에 자세를 고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추사 김정희의 서결(書訣)은 서예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나 이미 배우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 생각한다. 우연히 이문열의 금시조라는 소설에서 추사의 서결을 인용한 것을 보게 되어 나름대로 이해한 것을 적어보려 한다.


우선 이문열의 금시조에 인용 된 서결의 내용을 살펴 보자.


글씨가 법도로 삼아야 할 것은 텅 비게 하여 움직여 가게 하는 것이다. 마치 하늘과 같으니, 하늘은 남북극이 있어서 그것으로 굴대를 삼아 그 움직이지 않는 곳에 잡아매고, 그런 후에 그 하늘을 항상 움직이게 한다. 글씨가 법도로 삼는 것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이다. 이런 까닭으로 글씨는 붓에서 이루어지고, 붓은 손가락에서 움직여지며, 손가락은 손목에서 움직여지고, 손목은 팔뚝에서 움직여지며, 팔뚝은 어깨에서 움직여진다. 그리고 어깨니 팔뚝이니 팔목이니 하는 것은 모두 그 오른쪽 몸뚱어리라는 것에서 움직여진다…….



1. 글씨가 법도로 삼아야 할 것은 텅 비게 하여 움직여 가게 하는 것이다.


뒤따르는 문장에서 이 내용에 대하여 설명을 하는데 텅 비게 한다 함은 잡다한 힘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손가락, 손목, 팔뚝이 모두 스스로 힘을 주어 움직이게 되면 각각의 힘들이 서로 충돌하여 나아갈 곳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붓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2. 마치 하늘과 같으니, 하늘은 ~ 이와 같을 뿐이다.


하늘은 남북극이 있어서 그것으로 굴대를 삼아 그 움직이지 않는 곳에 잡아맨다는 말은 북극성은 움직이지 않고 하늘의 모든 별들은 그 북극성을 중심으로 회전을 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북극성도 움직이지만 옛부터 북극성은 하늘의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있다.

하늘의 모든 별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그 움직이는 것은 제각각의 속도가 아니라 서로의 간격을 유지한 채로 회전을 하기 때문에 하늘을 움직이게 한다고 설명을 한 것이라 생각된다.


3. 이런 까닭으로 글씨는 ~ 움직여진다.


이 문장에서는 하늘에 비유한 것과 비교하면 앞뒤가 바뀌어 설명이 되어 있다. 하늘의 북극성에 해당하는 것은 몸뚱아리, 특히 어깨가 된다. 몸은 흔들리지 않게 자리를 잡고, 팔뚝을 어깨에 잡아매고 움직여 가는 것이다. 별들이 간격을 유지하듯이 손목은 팔뚝과 간격을 바꿀 수 없다. 이것이 손가락을 통해 붓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첫 문장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야 한다. 몸에 붙은 끝단이 어깨이고 그 어깨에 매달린 팔뚝이 움직여 나아 가는데 팔뚝이 움직이는 것과 충돌하는 방향으로 손목이나 손가락에 힘을 주게 되면 붓이 움직여야 할 방향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위의 내용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단 서예 뿐만 아니라 운동이나 악기 연주에서도 동일한 원리를 찾을 수 있다. 당구를 일정 수준 이상 치는 사람이나 피아노 혹은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일정 수준 이상 연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쉽게 그 원리를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지지점과 작용점에 관한 것이다. 스스로는 당구도 고만고만하게 치고 악기도 소리만 내는 수준이지만 비교를 위해 나름대로 이해한 원리를 적어 보려고 한다.

당구에서 하늘의 북극성에 해당하는 것은 오른쪽 어깨가 될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지지점이 되는 것이다. 단단하게 고정시킨 브릿지(일명 큐걸이)는 몸의 힘이 붓을 통해 종이에 전해지도록 하는 손가락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앞으로 기울어진 몸의 균형을 잡아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는 역할을 더한다. 오른 팔뚝과 팔꿈치, 손목 등은 하늘의 별과 같이 오른 어깨를 따라 구르게 된다. 작용점이 되는 것이다. 이 움직이는 작용에 잡스러운 힘이 들어가면 공에 힘이 실리지 않거나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된다. 텅 비게 하여야 하는 원리인 것이다.

바이올린같은 현악기를 연주하는 경우에도 팔뚝과 손목은 어깨에 매달려 텅 비게 되어야 한다. 손목이 작용점이 되어 움직이는 것에 따라 활이 움직이고 활의 움직임은 현의 마찰을 일으키며 현은 그 마찰로 인한 떨림으로 소리를 낸다. 이 때 오른쪽 손가락은 팔뚝과 손목이 움직이는 힘과 리듬을 활을 통해 현에 전달할 수 있도록 단단하게 잡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활을 통해 현에 힘을 전달할 수 없거나 엉뚱한 음을 내게 된다. 당구에서와 마찬가지로 팔뚝은 텅 비어 자유롭게 움직여야 하는데 팔뚝이 움직여 나가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힘이 들어가게 되면 올바른 음을 내지 못하기도 하고 현을 충분히 울려주지 못하고 끊어지는 등의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모든 것이 텅 비게 하는 원리인 것이다.


피아노를 칠 때에도, 검도를 할 때에도, 골프를 칠 때에도, 축구를 할 때에도 몸의 자세는 이러한 원리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작용점과 지지점이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 몸을 움직이는 효과를 극대화 하는 방법은 인체의 구조가 똑같기 때문에 같은 원리로 작용하는 듯 하다.

추사 서결의 원문을 보면 몸뚱이를 단단하게 고정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는지에 관해서도 기술이 되어 있다. 발가락으로 땅을 움켜 쥐듯이 발을 디디고 몸의 중심을 잡을 것을 요구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있는데 글을 쓰기 위한 자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추사 서결의 전문에 관한 글은 후일 다시 기술하고 오늘은 이문열의 소설 금시조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하여 글을 적는다.

서예를 하는 사람이던, 캘리그래피를 하는 사람이던 붓을 들어 무엇인가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라면 추사의 서결에 적힌 깊은 뜻을 고민하여 깨우쳐 사통팔달(四通八達)하는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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