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파사주

민아는 입구에 붙인 안내문이 또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걸 발견했다.

아까 분명 똑바로 붙였는데.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을 창틀에 내려놓고 투명테이프를 찾았다. 테이블 위에는 가위 두 개와 커터칼, 쓰다 만 매직, 케이블 타이 묶음, 반쯤 뜯긴 과자 봉지가 뒤섞여 있었다. 테이프는 그 밑에 깔려 있었다.

“누가 이거 자꾸 건드려?”

대답은 없었다.

전시장 안쪽에서 선영이 말했다.

“바람.”

“실내에서 무슨 바람이야.”

“문 열어놨잖아.”

민아가 입구 쪽을 돌아봤다. 낡은 목제 문 두 짝 가운데 하나가 고정쇠에 걸린 채 열려 있었다. 밖의 더운 공기가 냉방이 덜 된 실내로 천천히 밀려들고 있었다. 골목 쪽에서는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가 한 번 크게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그럼 바람이 잘못했네.”

민아는 안내문 위쪽을 다시 눌러 붙였다.

“다음에 떨어지면 바람한테 시켜.”

바닥에 앉아 작품 아래쪽을 보고 있던 선영이 웃었다.

“응. 네가 말 잘하잖아. 네가 얘기해.”

“내가 왜 바람 담당이야?”

“사람 담당이니까.”

민아가 뭐라고 받아치려다가 그만뒀다. 맞는 말 같아서였다.

입구 옆 테이블에는 아직 방명록도 펴지지 않았고, 작은 종이컵들은 비닐째 쌓여 있었다. 개막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기도 하고 전혀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날에는 언제나 그랬다. 할 일은 거의 끝났는데 계속 생겼다.

그녀는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이 높은 공간은 밖보다 서늘했지만 오래된 건물 특유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마른 나무 냄새와 종이, 먼지, 조금 전까지 바닥에 붙였다 떼어낸 테이프의 접착제 냄새가 희미하게 섞였다. 작품들은 이미 벽에 걸려 있었고, 바닥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포장지가 몇 군데 접혀 있었다.

은서는 벽에서 두어 걸음 물러나 자기 작품을 보고 있었다.

“너 아까부터 그거만 보고 있지?”

민아가 물었다.

“아니.”

“보고 있었어.”

“아니라니까.”

은서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옆에 거 보고 있었어.”

“네 거 옆에 있는 것도 네 거잖아.”

“그러니까.”

민아가 웃으며 지나가는데 뭔가 이상했다.

두 걸음쯤 더 갔다가 멈췄다.

왼쪽 벽이었다.

작품 하나가 어둡다기보다 벽 한 구간 전체가 죽어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천장 트랙의 조명이 각도를 달리하며 작품 위에 빛을 얹고 있었는데, 그곳만 색이 갑자기 빠진 것처럼 보였다.

민아가 고개를 들었다.

“수경아.”

대답이 없었다.

“정수경.”

멀리서 수경의 목소리가 왔다.

“왜.”

“여기 불 안 들어오는데?”

그제야 여러 사람이 동시에 위를 봤다.

수경이 가장 먼저 왔다. 지연은 들고 있던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고, 은서는 자기 작품 앞에서 두 걸음 옆으로 움직였다. 선영은 바닥에 앉은 채 천장을 올려다봤다.

수경이 벽 쪽 스위치를 한 번 봤다.

“이쪽만?”

“응.”

“아까는 켜졌는데.”

“아까 언제?”

“점심 먹기 전.”

선영이 말했다.

“그럼 전구가 나간 거 아냐?”

“세 개가 한꺼번에?”

지연이 위를 보며 말했다.

“같은 줄이네.”

민아가 손뼉을 한 번 쳤다.

“좋아. 발견은 했고. 이제 누가 해결해.”

수경이 민아를 봤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보통 해결하는 거 아니야?”

“나는 발견자야. 역할 끝.”

“편하네.”

“능력이지.”

수경은 이미 관리실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관리실에서 온 남자는 작은 접이식 사다리를 펴고 올라가 트랙 조명 한두 개를 확인했다. 전원을 내렸다 올리는 동안 전시장 전체가 잠깐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지만 문제의 구간은 그대로였다.

“등 문제가 아니라 이쪽 트랙 쪽 같아요.”

수경이 물었다.

“오늘 고칠 수 있어요?”

남자가 시계를 한번 보고 천장을 다시 봤다.

“지금 열어서 보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어디서 끊긴 건지 봐야 해서.”

“개막 전에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장담 못 해요.”

수경은 더 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민아가 옆에서 말했다.

“알겠다고?”

수경은 전시장을 한 바퀴 봤다.

“옮기자.”

은서가 바로 물었다.

“뭘?”

“작품.”

“내 거?”

“네 것만 말고.”

수경이 어두워진 벽 쪽으로 걸어갔다.

“이 벽을 원래대로 살리려고 하지 말고, 여기서 빛을 빼.”

은서가 따라갔다.

“저건 빛이 있어야 돼.”

“알아. 그러니까 옮긴다고.”

“어디로?”

“잠깐만.”

수경은 벽과 맞은편 공간을 번갈아 봤다. 말이 없어지자 다른 사람들도 같이 움직였다. 지연은 입구에서부터 걸어 들어오며 관객이 처음 보게 될 벽의 순서를 확인했고, 선영은 이미 다른 트랙 조명의 각도를 살피고 있었다.

“이쪽 하나 빼면?”

선영이 오른쪽 벽을 가리켰다.

수경이 봤다.

“뭐를?”

“끝에 있는 거.”

은서가 인상을 썼다.

“그러면 거기 너무 비잖아.”

지연이 그쪽을 봤다.

“꼭 채워야 하나?”

은서가 고개를 돌렸다.

“저만큼?”

“응.”

지연은 직접 그 앞으로 걸어갔다. 벽 중앙 가까이에 서서 입구 쪽을 한 번 보고 다시 작품을 봤다.

“이게 옆으로 가면 여기서 한 번 끊기잖아. 나쁘지 않은데.”

“너야 비어 있는 걸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비었다고 다 부족한 건 아니잖아.”

선영이 말했다.

“난 찬성.”

은서가 선영을 봤다.

“넌 네 거 아니라고.”

“내 거 옮겨도 돼.”

“아, 진짜?”

“응.”

선영은 너무 쉽게 대답했다.

은서가 잠깐 할 말을 잃었다.

민아는 그 사이 입구 쪽을 보고 있었다.

“잠깐. 이거 하려면 지금 해야 돼. 이십 분 있으면 사람 오기 시작할 거야.”

“삼십 분 남았어.”

수경이 말했다.

“아는 사람들은 일찍 온다니까.”

“그 사람들이 잘못이지.”

“그걸 입구에서 내가 말해?”

“네가 사람 담당이라며.”

“그 말 누가 했어.”

“바람.”

선영이 말했다.

이번에는 지연도 웃었다.

은서는 아직 벽을 보고 있었다. 자기 작품을 한참 보다가 반대쪽으로 직접 걸어가 섰다. 수경이 말한 자리가 아니라 조금 더 안쪽이었다.

“이쪽이면?”

수경이 다가갔다.

“조명이 닿아?”

선영이 천장 쪽에서 대답했다.

“돌리면 와.”

“관객 동선은?”

민아가 직접 걸어봤다. 입구 쪽에서 들어와 작품 앞에 멈추는 흉내를 내고 다시 안쪽으로 이동했다.

“괜찮아. 대신 여기 테이블 빼야 돼.”

“그거 방명록 테이블 아니야?”

“입구에 작은 거 하나 더 있잖아.”

수경이 말했다.

“빼.”

결정이 나자 갑자기 말이 줄었다.

다섯 사람은 각자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

작품을 내릴 때는 둘이 붙었다. 한 사람은 액자를 잡고 다른 사람은 벽의 고리를 확인했다. 선영은 바닥에 무릎을 대고 작품 아래쪽 간격을 봤고, 수경은 몇 걸음 뒤에서 전체 높이를 확인했다. 민아는 포장지를 치우다가 입구로 달려가 냉장고에 넣어둔 물을 꺼내왔고, 돌아오는 길에 테이블까지 옮겼다.

“이거 더 왼쪽.”

수경이 말했다.

선영이 작품을 든 채 물었다.

“얼마나?”

“조금.”

“조금이 얼마.”

“십 센티?”

“그럼 십 센티라고 처음부터 말해.”

“십이.”

“야.”

“열.”

지연이 벽 앞에 서서 웃었다.

“둘이 결혼하면 진짜 피곤하겠다.”

수경과 선영이 동시에 지연을 봤다.

“미쳤어?”

“싫어.”

두 목소리가 겹쳤다.

이번에는 민아가 웃다가 들고 있던 물병을 떨어뜨릴 뻔했다.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생각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부부였다.

민아는 둘을 모르는 듯했지만 일단 웃으며 맞았다. 곧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고, 입구는 금세 좁아졌다. 누군가는 신발을 끌었고 누군가는 문 앞에서 들어올 사람과 나갈 사람이 서로 비켜주느라 몸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 다섯 사람의 발소리가 크게 들리던 공간에 목소리가 겹치기 시작했다.

지연은 벽 가까이에 붙어 서 있다가 자신이 통로를 막고 있다는 걸 깨닫고 옆으로 비켰다. 작업하던 시간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되어 있었다.

자기들이 방금 옮긴 작품 앞에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사실이 매번 조금 이상했다.

좀 전까지는 벽에서 내려 바닥에 세워두고, 뒤를 보고, 못의 위치를 바꾸고, 액자 아래쪽을 손바닥으로 받치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그 앞에 서서 팔짱을 끼는 순간부터 함부로 만지면 안 될 것 같은 것이 됐다.

한 여자가 지연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는 뭘 말하는 거예요?”

지연은 작품을 봤다.

“제가 만든 건 아닌데요.”

“아.”

여자가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지연이 웃었다.

“근데 제가 보는 건 말할 수 있어요.”

여자도 웃었다.

“그럼 그거라도.”

지연은 다시 작품을 봤다.

무엇을 말하는 작품인지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오른쪽이 아주 조금 무거웠다. 아마 조명을 옮긴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무게 때문에 반대쪽 빈 공간이 더 커 보였다.

지연은 그 얘기를 했다.

여자가 잠시 작품을 보더니 말했다.

“나는 반대로 봤는데.”

“어떻게요?”

“여기가 빠지는 것 같아요. 무거운 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지연도 다시 봤다.

“그러네요.”

“내가 맞다는 건 아니고.”

“아니, 진짜 그렇게 보여요.”

여자가 웃었다.

“방금 전이랑 말이 달라졌잖아요.”

“보는 위치가 바뀌었으니까요.”

지연은 그 말이 특별한 대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사실이었다.

민아가 지나가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끼어들었다.

“지연이는 원래 말 바꾸는 데 논리가 있어요.”

“야.”

“생각이 많아서 그래.”

“너 저쪽이나 봐.”

“왜?”

“누가 너 찾는데.”

민아가 뒤를 돌아봤다.

실제로 누군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봤지? 나 인기 많아.”

“가.”

민아는 벌써 그쪽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아, 근데 저분한테 물어보지 마세요. 설명 길어요.”

지연이 등을 향해 말했다.

“서민아.”

“왜.”

민아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입 닥쳐.”

“네.”

그 대답에 근처 사람들이 웃었다.

은서는 같은 질문을 세 번째 받고 있었다.

“직접 한 거예요?”

“네.”

“이 재료를 왜 썼어요?”

앞의 두 사람은 그냥 예쁘다고 했다. 은서는 그 말도 싫지 않았다. 예쁘게 보인다면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사람은 작품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고 한동안 전체를 보고 있었다.

은서는 손에 들고 있던 물잔을 반대편 손으로 옮겼다.

“처음부터 이걸 쓰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그럼요?”

“다른 걸로 시작했는데 너무 깔끔해져서요.”

“깔끔해져서 싫었어요?”

“네.”

대답이 너무 빨리 나와서 은서 자신도 웃었다.

“그게 좀 싫었어요.”

남자도 웃었다.

“왜요?”

은서는 작품을 한 번 봤다.

“다 이해되는 것 같아서.”

“이해되면 안 돼요?”

“저는 재미없어요.”

“본인이?”

“네. 제가 재미없으면 계속 못 하니까.”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함을 꺼내거나 대단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한참 뒤에 다시 작품을 봤고, 옆에 있는 다른 작업까지 천천히 보고 갔다.

은서는 그 사람이 입구 쪽으로 사라지는 걸 잠깐 지켜봤다.

민아가 옆으로 왔다.

“누구야?”

“몰라.”

“되게 오래 보던데.”

“그러게.”

“좋아?”

“뭐가.”

“오래 봐주니까.”

은서가 물잔을 마셨다.

“당연히 좋지.”

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더 많이 보면 더 좋고.”

“욕심 봐.”

“왜.”

“아니. 좋아.”

민아는 웃으며 다시 다른 사람에게 갔다.

은서는 작품 앞에 남았다. 누군가 다시 들어와 옆에 섰지만 조금 전 남자가 무엇을 생각했을지는 더 궁금하지 않았다. 다음에 다른 곳에 걸면 어떻게 보일지가 더 궁금했다.

그때 선영이 벽 아래쪽으로 몸을 숙였다.

“뭐 해?”

은서가 물었다.

“잠깐.”

“사람들 다니는데.”

“그러니까 잠깐.”

선영은 작은 종이 한쪽이 아주 조금 들떠 있는 걸 손가락으로 눌렀다. 아까 붙였던 부분이었다.

은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걸 지금 해야 돼?”

“보이잖아.”

“나 안 보여.”

“나는 보여.”

“아무도 안 봐.”

선영이 손을 떼고 한 걸음 물러났다.

“이제 됐어.”

“진짜 피곤하다.”

“너도 네 거 계속 보고 있잖아.”

은서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거랑 이거랑 같아?”

“비슷하지.”

“안 비슷해.”

“그럼 말고.”

선영은 이미 다른 쪽으로 가고 있었다.

은서는 그 등을 보다가 웃었다.

마지막 관객은 폐장 시간을 십 분쯤 넘겨서야 나갔다.

그 사람이 밖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소리가 문 너머로 조금 들렸고, 민아가 문을 닫자 전시장은 갑자기 넓어졌다.

“끝.”

민아가 말했다.

수경은 바로 대답했다.

“안 끝났어.”

“왜.”

“치워야지.”

민아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 말 할 줄 알았어.”

다섯 사람은 다시 움직였다.

개막 전에는 그렇게 급해 보이던 물건들이 이제는 이상할 정도로 하찮아 보였다. 빈 종이컵, 냅킨, 테이블 밑으로 굴러간 병뚜껑, 입구에서 떼어낸 포장 비닐. 민아와 지연이 잔을 모았고, 수경은 방명록과 테이블 위 인쇄물을 챙겼다. 선영은 낮에 사용한 공구와 사다리를 보관 장소로 가져갔다. 벽 가까이에 임시로 붙여둔 테이프도 떼어냈다.

은서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한참 서 있었다.

“왜?”

지연이 물었다.

“이거 일반쓰레기 맞아?”

“뭐가?”

은서가 봉투 안에서 뭔가를 집어 들었다.

“이거.”

민아가 봤다.

“종이잖아.”

“테이프 붙었잖아.”

수경이 멀리서 말했다.

“그거 하나 때문에 지구 안 망해.”

은서가 고개를 들었다.

“너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빨리 버려.”

“아니, 분리해서 버리면 되잖아.”

선영이 지나가며 은서 손에서 종이를 빼앗았다. 테이프를 떼고 종이는 종이 쪽에, 테이프는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됐지?”

은서가 말했다.

“역시 선영이밖에 없다.”

수경이 들으라는 듯 말했다.

“데려가.”

“뭘?”

“같이 살아.”

민아가 바닥을 닦다가 웃었다.

“오늘 왜 자꾸 결혼시켜?”

지연이 말했다.

“너희 둘도 괜찮아.”

“이지연.”

이번에는 네 사람이 거의 동시에 이름을 불렀다.

지연은 빗자루를 들고 한 발 물러났다.

“알았어. 안 할게.”

민아가 말했다.

“너 오늘 기분 좋구나?”

“응.”

지연이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 말이 너무 간단해서 민아는 잠깐 지연을 봤다가 다시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정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민아가 입구 옆에 쭈그리고 앉아 아까 떨어졌던 안내문의 테이프를 떼었다.

“아까 누가 물어보던데.”

“뭘?”

선영이 물었다.

“다음 전시는 어디서 하냐고.”

수경이 방명록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다음이 있다고 누가 그래.”

“나도 그래서 모른다고 했지.”

“잘했네.”

“근데 말하고 나니까 좀 없어 보이더라.”

은서가 말했다.

“그럼 있다고 하지.”

“어디서?”

“어디든.”

“그게 제일 수상한 대답이야.”

민아가 말했다.

선영이 웃었다.

“서울이라고 해.”

“왜 서울이야?”

“아무 데나 하나 말하라며.”

“그럼 부산.”

“갑자기 부산은 왜.”

“바다 있잖아.”

지연이 끼어들었다.

“전시는 왜 자꾸 관광지로 가?”

“끝나고 놀아야지.”

민아가 말했다.

“그게 목적이었어?”

“중요하지.”

수경이 고개를 저었다.

“너희랑 하면 전시보다 숙소 정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려.”

“숙소 중요하지.”

“또 시작한다.”

말이 옆으로 새자 금방 다른 이야기가 붙었다. 부산이면 회를 먹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고, 누가 회를 못 먹는다는 얘기가 나왔고, 그런 적이 없는데 왜 갑자기 못 먹느냐는 시비가 붙었다.

은서는 쓰레기봉투를 묶다가 말했다.

“나는 더 큰 데서 한 번 해보고 싶긴 해.”

민아가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큰 데?”

“몰라. 그냥 큰 데.”

“벽이?”

“사람이.”

“그럼 시장에서 해.”

“야.”

은서가 묶은 봉투를 민아 쪽으로 던지는 시늉을 했다.

선영이 웃으며 말했다.

“난 벽이 큰 데도 좋아.”

“너는 벽보다 작업실부터 구해야 돼.”

수경이 말했다.

선영이 바로 받았다.

“맞아. 큰 작업실.”

“돈은?”

민아가 물었다.

선영이 잠깐 생각했다.

“그건 나중에.”

“제일 중요한 걸.”

“지금 얘기하면 재미없잖아.”

은서가 웃었다.

“그건 맞아.”

지연은 바닥에 떨어진 테이프 조각을 주워 손가락 끝에 붙였다 떼며 말했다.

“아직 안 가본 데면 됐지 뭐.”

민아가 돌아봤다.

“어디?”

“어디든.”

“너까지 왜 그래.”

“네가 시작했잖아.”

수경이 말했다.

“하여튼 아무도 계획이 없네.”

민아가 바로 물었다.

“너는 있어?”

수경은 가방을 들었다.

“오늘 집에 가는 계획.”

“그건 나도 있어.”

“그것부터 성공해.”

그 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났다.

밖에서는 늦은 버스가 큰길을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문이 닫혀 있어서 소리는 낮고 길게 깔렸다. 냉방기는 조금 전보다 약한 바람을 내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시간을 봤다.

갑자기 모두가 움직였다.

“야, 진짜 가야 돼.”

“이거 다 했어?”

“쓰레기.”

“버렸어.”

“냉장고.”

“물만 남았어.”

“문 잠그기 전에 화장실 확인해.”

“내 가방 어디 있지?”

“아까 의자 밑.”

“누가 내 충전기 봤어?”

“서민아, 그거 네 거 아니고 내 거야.”

“아, 그러네.”

마지막에는 늘 이런 식이었다.

큰 이야기를 하다가도 가방을 찾고, 쓰레기를 버리고,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민아가 입구의 안내문을 완전히 떼었다. 낮 동안 여러 번 떨어졌다 붙은 종이는 모서리가 조금 구겨져 있었다.

“이거 버려?”

수경이 봤다.

“응.”

“진짜?”

“왜.”

“마지막인데.”

수경이 잠깐 종이를 봤다.

“그럼 네가 가져.”

민아는 종이를 다시 봤다.

“됐어.”

구겨서 버리지는 않았다. 반으로 접고 다시 한 번 접어서 폐지 쪽에 놓았다.

조명이 하나씩 꺼졌다.

개막 직전 문제가 생겼던 벽도 어두워졌고, 그 옆의 작품들도 색을 잃었다. 마지막 일반 조명이 꺼지자 출구 표지의 낮은 빛만 남았다.

다섯 사람은 문 밖으로 나왔다.

안쪽에 사다리는 없었다. 공구도 치웠고, 바닥을 가로지르던 임시 선도 정리되어 있었다. 벽에는 작품들만 남았다.

문이 닫혔다.

누군가 계단을 먼저 내려갔고, 다른 누군가가 뒤에서 뭐라고 소리쳤다. 바로 웃음소리가 따라 내려갔다.

조금 뒤 그것도 들리지 않았다.

전시장 안에는 하루 동안 사람들이 오간 흔적이 조금 남아 있었다. 벽 아래에 떼어낸 작은 테이프 조각 하나가 붙어 있었고, 창틀에는 바닥이 조금 젖은 종이컵 하나가 놓여 있었다.

냉방이 멈춘 뒤 오래된 건물의 낮은 소리가 돌아왔다.

작품들은 어두운 벽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에필로그. 흐르며 울리는 존재로 산다는 것

— 나는 구조였고, 흐름이었고, 그리고 하나의 파동이었다 —


우리는 고정된 실체로 살아가는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은 늘 흐르는 존재였다.
에너지가 드나들고, 감정이 움직이고,
생각이 변하고, 관계가 재배열되는 그 모든 순간 속에서
우리는 움직이고 반응하는 하나의 구조물이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원자처럼 들여다보았고,
물성처럼 감지해보았으며,
진동처럼 파악해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삶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흐름의 조건이 바뀌며 재조정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느 시기엔 단단했고,
어느 시기엔 유연했고,
어느 날엔 멈췄고,
또 어떤 날엔 넘쳤다.

때로는 관성에 묶여 움직이지 못했고,
때로는 임계점을 넘는 에너지로 변화를 시작했다.
감정은 방출되었고,
그 방출은 창조가 되었고,
그 창조는 다른 존재에게 울림이 되었다.

그 모든 순간이 ‘살아 있는 존재’였다는 증거였다.


우리는 때로 쇠퇴했고,
그 쇠퇴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쇠퇴는 무너짐이 아니라
재정렬을 위한 중간 단계였다.

죽음조차,
완전한 끝이 아니라
흐름의 방향이 바뀌는
형태의 해체일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공진하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혼자 떨리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와 함께 울리는 하나의 파동이었다.
내가 내는 진동은
누군가의 마음속 어딘가에 닿을 수 있었고,
그 사람의 떨림이 다시 나를 울릴 수 있었다.

그 연결은 설명되지 않아도,
분석되지 않아도,
진짜였다.


이제 당신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은
어떤 흐름 속에 있는가?
당신 안의 에너지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누구를 울리고 있는가?


당신이 존재하는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미세한 떨림을 남길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삶이다.

이 책이
그 떨림을 잠시 들여다보는
한 조각의 울림이 되기를 바란다.


 

 


9장. 공진과 공감 – 울림은 연결을 만든다

— 파장이 맞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느낀다 —


세상의 모든 물질은 진동한다.
보이지 않지만, 모든 원자와 전자는
자신만의 주파수로 떨리고 있다.
이 진동은 고립된 채 머물지 않는다.
적절한 순간,
적절한 거리,
적절한 조건이 갖춰지면
그 떨림은 다른 존재를 울린다.

그것이 공진이고,
그것이 공감이다.


공진이란 무엇인가?

물리학에서 공진(resonance)은
하나의 진동체가 다른 진동체와 동일한 주파수로 진동하면서,
그 떨림이 증폭되는 현상
을 말한다.

  • 기타의 한 줄이 울리면,
    같은 음의 줄이 옆에서 스스로 떨기 시작한다.
  • 라디오를 특정 채널에 맞춰야 소리가 들리는 것도
    주파수를 일치시켜야 신호가 ‘울림’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 때로는 이 공진이 너무 강해 구조물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다리가 공진에 의해 붕괴된 사례들이 그 예다.

공진은 단순한 떨림이 아니다.
에너지의 일치, 파장의 공명, 감응의 극대화다.
그리고 이 현상은 물질만의 일이 아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감정도 진동한다

우리의 감정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기쁘면 진동이 가볍고 빠르고,
슬프면 진동이 무겁고 느리다.
감정은 진동수로 표현할 수 있는
심리적 파장이다.

그리고 이 파장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
그 전달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때,
우리는 그것을 공감이라 부른다.

  • 누군가의 말에 가슴이 울컥할 때
  • 슬픈 노래 한 소절에 눈물이 날 때
  • 어떤 사람의 눈빛에 이유 없이 편안함을 느낄 때

그건 ‘이해’가 아니라
진동의 일치다.
공진이 만들어낸 감응이다.


울림은 관계를 만든다

인간은 언어보다 먼저,
진동으로 서로를 인식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기분은 전해지고,
거리감은 느껴지고,
안심은 전달된다.

가까운 친구, 연인, 가족을 떠올려보자.
그들은 늘 말을 많이 해서 가까운 것이 아니다.
같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고,
같이 있으면 진정되는 이유

바로 그들의 파장과 내 파장이
일정한 리듬으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공진하는 것이다.


파장이 안 맞는다는 건 무엇인가?

살면서 우리는 자주 말한다.
“파장이 안 맞아.”
“이상하게 불편해.”
“말은 맞는데, 마음은 안 따라가.”

그건 나의 감정이 틀린 것이 아니라,
진동이 일치하지 않는 상태다.

공감은 억지로 만들어낼 수 없다.
공진은 ‘맞춤’이 아니라,
우연히 ‘겹쳐짐’이다.

그래서 진짜 연결은
계획이 아니라,
흐름 속의 발견이다.


우리는 서로의 공명기다

나는 울릴 수 있는 존재이고,
또한 울릴 수 있는 존재다.

어떤 말은 다른 이의 마음을 흔들고,
어떤 행동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메아리친다.
그건 ‘내용’ 때문이 아니라,
진동이 닿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영향력은
다른 존재를 울릴 수 있는 떨림을 만드는 일이다.

그 떨림은 반드시 말이나 성과가 아니어도 된다.
눈빛 하나, 기다림 하나,
어떤 침묵도 때로는 가장 강한 울림이 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우리는 울고 있다

우리는 인생의 끝에 도달할 때
많은 것을 떠나보낸다.
하지만 울림은 남는다.

누군가에게 내가 했던 한마디,
나와 보냈던 시간의 떨림,
그 사람 안에 남은 감정의 여운.

그건 내가 떠난 이후에도
계속 울리는 진동이다.
그 울림이 바로 존재의 흔적이다.


당신의 진동은 지금 누구와 공진하고 있는가?

삶은 고립된 떨림이 아니라,
서로 겹쳐지고, 반응하고, 울리는 파동의 교차점이다.

당신이 지금 누구의 리듬에 맞춰 살고 있는지,
누구의 말에 떨리고,
누구와 함께 있을 때 편안한지,
그 모든 순간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울림은 관계의 언어이며,
존재가 존재를 만나 울리는 방식이다.


 

 


8장. 쇠퇴와 재탄생 – 끝나는 것은 시작되기 위한 준비다

— 모든 해체는 다른 구조로 나아가기 위한 예비 단계다 —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관계가 무너질 때,
몸이 약해질 때,
내가 믿던 가치가 흔들릴 때,
우리는 그걸 ‘쇠퇴’라고 부른다.

쇠퇴는 어딘가에 선을 긋는 일 같다.
“이제 끝났다.”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바뀌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에너지가 고갈되면 구조가 바뀐다

모든 생명은 유지에 에너지를 쓴다.
움직이는 것도, 감정을 느끼는 것도,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모두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기존의 시스템은 유지되지 않는다.
더는 지탱할 수 없는 시점이 온다.

  • 식물은 물이 끊기면 시든다.
  • 별은 수소를 다 태우면 붕괴된다.
  • 인간도 감정 에너지가 바닥나면
    관계도, 열정도, 방향도 함께 사라진다.

이건 쇠퇴다.
그러나 곧,
다른 에너지 흐름을 위한 자리 비움이기도 하다.


쇠퇴는 끝이 아니라, 리듬의 전환점이다

삶은 항상 오르기만 하지 않는다.
모든 흐름에는 리듬이 있다.

  • 성장 → 정체 → 쇠퇴 → 전환 → 회복.
  • 몰입 → 소진 → 휴식 → 회복 → 재몰입.
  • 관계 형성 → 갈등 → 거리두기 → 재정비 → 성숙.

쇠퇴는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간이지만,
그 자체로 완결된 단락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 리듬을 위한
전환 구간이자 배열 재설계의 구간이다.


구조는 해체되어야 재조립된다

철거되지 않은 건물에는 새 건물을 세울 수 없다.
기존의 설계를 고수한 채로는
다른 기능을 설계할 수 없다.

그러니 무너지는 건
실패나 끝이 아니라,
공간의 회복이다.

정신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이미 내부 구조가 해체되고 있는 중이다.
마음은 이미 ‘새로운 것을 허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조차 재배열의 과정일 수 있다

우리가 가장 큰 쇠퇴로 여기는 것은 죽음이다.
하지만 죽음조차
완전한 소멸이라기보다는
형태의 해체와 흐름의 재편일 수 있다.

육체는 분해되어
흙으로, 공기로, 물로 되돌아가고,
그 물질은 다른 생명에게 다시 흡수된다.

기억은 다른 이들의 말 속에 남고,
감정은 누군가의 의식 속에 흔적으로 남는다.

어떤 철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태어나기 이전의 나와, 죽은 후의 나는 다르지 않다.
그저 잠시 형상을 가진 흐름일 뿐이다.”

죽음은 문이 아니라,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경계일지도 모른다.


쇠퇴를 두려워하는 마음에 대하여

쇠퇴가 무서운 건
그 안에서 내가 ‘작아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가치 없다고 여겨지고,
무기력하다고 느끼고,
세상에 남는 게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쇠퇴는
기존의 기능이 멈추는 것일 뿐,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능이 멈추면 구조가 바뀐다.
구조가 바뀌면 새로운 기능이 가능하다.
이것이 재탄생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리듬 위에 있는가?

당신은 지금,
무언가가 예전 같지 않은 시기를 지나고 있을 수도 있다.

  • 예전엔 열정이 있었던 일에 아무 감흥이 없고,
  • 가까웠던 관계가 어색해지고,
  • 자기 자신조차 이해되지 않는 느낌이 들 때.

그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리듬으로 넘어가기 위한 전환이다.

지금 필요한 건
억지로 회복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잠시 흐름을 허용하는 용기다.

쇠퇴는 고장이 아니라
다시 쓰기 위한 초기화일 수 있다.


 

 


7장. 충돌의 역설 – 갈등은 창조의 시작점이다

— 흔들림은 무너짐이 아니라 재정렬의 전조다 —


고요한 상태에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는
질서는 유지되지만,
새로운 건 생겨나지 않는다.

창조는 균형이 깨지는 순간에서 출발한다.
즉, 충돌은 종말의 징후가 아니라,
변화가 시작되는 신호다.


모든 창조는 균열에서 시작된다

지각판이 충돌할 때 산이 솟고,
두 기류가 부딪칠 때 폭풍이 생기며,
지하의 압력이 임계점을 넘을 때
화산이 분출된다.

자연은 균열과 파괴를 통해
기존의 구조를 부수고,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건 인간 사회와 감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 사회적 충돌은 새로운 제도를 낳고,
  • 관계의 갈등은 새로운 이해를 낳고,
  • 내면의 혼란은 새로운 나를 낳는다.

충돌은 불편함을 동반하지만,
그 불편함이 새로운 질서로 넘어가는 문을 연다.


역사 속 창조는 혼란에서 태어났다

역사를 보면,
가장 빛나는 철학과 예술은
대개 혼란과 붕괴의 시대에 등장했다.

  • 춘추전국시대의 유가, 도가, 법가.
  • 르네상스 이전 유럽의 전염병과 몰락.
  • 조선 후기의 당파 싸움과 실학의 대두.
  •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파괴 속에서 태어난 시와 예술들.

질서가 무너진 자리에서,
기존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혼돈 속에서
사람은 새로운 언어,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냈다.

갈등은 파괴이자
표현되지 않은 욕망의 형식화 과정이었다.


개인의 내면에서도 충돌은 일어난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이 충돌할 때 가장 괴롭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살고 싶고,
한편으로는 이대로 머물고 싶다.
마음은 움직이려 하고,
두려움은 발목을 잡는다.

감정과 이성,
이상과 현실,
자아와 타자,
현재와 과거.

이런 충돌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우리는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된다.

융은 이를 '개성화' 과정이라고 불렀다.
내면의 그림자와 페르소나가 충돌하고
그 사이에서 **진정한 자아(Self)**가 형성된다.


파괴는 창조의 자궁이다

파괴는 무너뜨리는 것이지만,
그 무너짐 속에
다른 가능성이 숨어 있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깨졌을 때,
회사를 그만뒀을 때,
삶이 전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 안에는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여백이 생긴다.
처음에는 쓰러진 자리처럼 보이지만,
곧 보면
새로운 구조를 그릴 수 있는 평지다.

창조는 바닥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바닥은
이전 질서의 무너진 잔해일 수도 있다.


갈등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가 진짜 창조적이다

진짜 건강한 사회, 조직, 관계는
갈등이 없는 곳이 아니라,
갈등을 감당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 곳이다.

  • 싸워도 무너지지 않고,
  • 다퉈도 돌아올 수 있고,
  • 충돌해도 흡수할 수 있다면,
    그 구조는 새로운 것을 낳을 수 있다.

무너지는 게 두렵지 않은 시스템,
그것이 진짜 창조의 기반이다.


당신 안의 충돌은 무엇을 낳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어떤 충돌 속에 있는가?

  • 머릿속에서 충돌하는 두 가지 선택지.
  • 마음속에서 부딪히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
  • 타인과의 갈등, 혹은 나 자신과의 갈등.

그 충돌은 지치게 만들지만,
잘 보면
새로운 에너지가 싹트는 지점이다.

균열은 약함의 상징이 아니라,
다른 흐름이 들어올 수 있는 틈이다.

그 틈에서
다음 장면이 시작된다.


 

 


6장. 틀과 초월 – 배움과 반복 속에서 창조로 나아가기

— 형식은 감옥이 아니라 발판이다 —


어떤 사람은 예술을 배우면 자유를 잃는다고 말한다.
형식 안에 갇히고, 규칙에 묶이고, 틀에 익숙해지면
자신의 ‘창조성’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느낀다.

하지만 실은 정반대다.

진짜 창조는 틀을 넘는 순간에 일어나지만,
그 틀을 모르는 사람은 넘을 수도 없다.

창조는 무(無)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재배열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익숙함은 반복에서 만들어진다.


반복은 단순한 훈련이 아니다

배움의 시작은 언제나 모방이다.
처음에는 그저 따라 한다.
생각 없이 외우고,
흉내내고,
형태를 익힌다.

하지만 반복이 누적되면,
그 안에서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왜 이렇게 되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르고,
‘이건 이렇게도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변형이 시도된다.

이때부터 우리는
단순히 외우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의 문턱에 선 존재가 된다.


틀은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설계하는 도구다

틀은 우리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몸으로 리듬을 익히는 장치다.

운동선수는 기본 자세를 수천 번 반복한다.
예술가는 형식을 따라 명작을 모사한다.
기술자는 기존 모델을 따라 만들고,
음악가는 정해진 스케일 안에서 연습을 반복한다.

그들은 그 형식을 통해
몸에 리듬을 새긴다.
그리고 그 리듬이 완전히 내 것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 틀을 ‘잊고’ 움직일 수 있다.

틀을 버린 것이 아니라,
틀을 넘어선 것이다.


틀을 초월한 사람은 다시 틀을 만든다

창조자는 기존 형식을 부수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는 다른 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새로운 작곡가는 기존 음악 이론을 알고 있고,
새로운 철학자는 고전을 꿰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자는 표준 규격을 내면화한 사람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기존의 흐름을 비틀고,
그 안에 자신만의 질서를 심는다.
그 순간,
틀은 해체가 아니라,
재조립된다.


초월은 ‘거부’가 아니라 ‘흡수’다

우리는 종종 ‘틀을 넘어서라’는 말을
기존 것을 부정하라는 뜻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초월은 거부가 아니다.
그건 오히려 완전한 수용 이후의 선택이다.

틀을 부정한 사람은
새로운 걸 만들지 못한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것도 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월은
기존의 것을 이해하고,
내면화하고,
그 위에 자기만의 틀을 얹는 일이다.


창조는 기존 질서에 대한 새 해석이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창조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
기존의 것을 다른 맥락에서 배열하는 능력,
배운 것을 지우는 게 아니라, 다른 언어로 다시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끊임없이 배운 사람,
지루할 만큼 반복한 사람,
형식을 몸에 새긴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틀을 버리는 게 아니라, 틀 위에 올라서라

창조는 탈출이 아니다.
그건 하나의 언어를 마스터한 뒤
그 언어로 시를 쓰는 것과 같다.

틀을 버리는 게 아니다.
틀 위에 올라서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읽고,
더 자유롭게 연결할 수 있다.


당신 안에 있는 틀은 무엇인가?
그 틀을 얼마나 오래 익혀왔는가?
그리고 이제,
그 틀을 잊을 만큼 자유로워졌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당신만의 틀을 만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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