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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과 호응 - 1편 본문

서예/들풀의 서예론

균형과 호응 - 1편

Dr. Jo 2016. 12. 1. 10:36

앞서 신영복 교수님의 서도의 관계론에 나오는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앞선 획을 배려하여 뒤따르는 획이 양보를 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균형과 호응의 원리를 따라 이루어지게 됩니다. 획의 방향이나 굵기 뿐만 아니라 먹색의 짙은 정도, 획의 마름과 윤택함 등이 모두 균형을 다르게 만드는 요소가 되겠습니다만 우선 눈에 보이는 획의 형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선 호응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호응"이라는 글자를 한번 보겠습니다.

 

 

뭔가 싶으실 것입니다. 그냥 호응이라는 글자인데, 뭐가 호응인가 싶으신가요?

다음 그림을 보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응자의 "ㅡ" 획은 호자의 "ㅎ"과 "ㅗ" 획에 자리를 양보하고 그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또한 응자의 두 "ㅇ"은 호자의 "ㅎ"과 "ㅗ"에 자리를 양보하고 있습니다. 서로 침범하지 않고 공간을 나누어 쓰면서 서로의 빈 공간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호자와 응자가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호자의 "ㅎ"에서 동그라미의 가장 볼록한 부분과 응자의 "ㅡ" 획이 서로 만나면 빈 공간은 빈 공간대로 허전하고 비좁은 곳은 비좁은 곳대로 복잡하여 갑갑하고 뭔가 부족한 느낌을 줍니다.

 

이런 복잡한 관계에서 한쪽에서 더 욕심을 부리면 어떻게 될까요?

 

 

 

 

가뜩이나 복잡한 공간이 더 복잡해 져서 잘못하면 서로 붙어 두 글자가 하나가 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서로 욕심을 내면 이렇게 답답한 형태가 되어 버립니다.

 

 

서예를 해 보면 한일자(一) 한 자도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단순하게 가로로 그은 획 하나인데 여러 형태를 가지는 것은 한 쪽에 양보를 하거나 나머지를 받쳐 주거나 전체를 두루 감싸 안아주기 위한 형태입니다. 그리고 획 하나에서도 그 굵기나 먹빛의 진하기 등에 따라 차지하는 공간이 달라지게 됩니다.

 

우선 가로획 하나가 좌우로 차지하는 공간이 어떻게 다른지 한번 보겠습니다.

 

 

획의 왼쪽은 가볍고 큰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있지만 무겁게 엉덩이를 깔고 앉은 획의 오른쪽은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획의 오른쪽에 다른 획이 있다면 답답하고 비좁은 느낌이 들겠지만 이 획의 왼쪽에는 다른 획이 자리를 잡아도 서로 부딛히지 않고 여유롭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렇게 주위에 획이 있는지 없는지 어떤 획들이 자리를 차지하는지에 따라 획의 모양도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한일(一)자 한 획도 다양한 모양으로 변신을 하고 있습니다.

 

첫 획처럼 단순히 오른쪽 위로 그으면 획이 기울어져서 글자가 기울어져 보입니다.

 

두번째 획 처럼 뒤쪽이 무거워지면 기울어진 글자가 저울처럼 균형을 잡고 기울어진 느낌을 바로잡아 줍니다.

 

세번째 획은 오른쪽 위로 향해서 기울어진 것을 오른쪽에 무게를 더해주어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획은 아래에 다른 획들에 공간을 양보하기 위하여 위쪽으로 무게를 담았습니다.

 

네번째 획은 왼쪽이 무겁고 오른쪽이 가벼운데 이것은 오른쪽에 있는 획들에 공간을 양보하는 획입니다.

 

마지막 획은 세번째 획과 마찬가지로 아래쪽에 획이 있을 때 아래쪽을 배려한 획입니다. 그렇지만 이 획은 세번째 획이 아래 획들에 양보를 한 것과 다르게 아래쪽의 획들을 감싸 덮어주는 획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서예를 하고 글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면 배려하는 마음과 서로 간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 완성을 위해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영복 교수님은 서도의 관계론에서 이것을 관계라고 표현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물론 지우거나 개칠(改漆)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상 획의 성패란 획 그 자체에 있지 않고 획과 획의 ‘관계’ 속에 있다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획이 다른 획을 만나지 않고 어찌 제 혼자서 ‘자(字)’가 될 수 있겠습니까. 획도 흡사 사람과 같아서 독존(獨存)하지 못하는 ‘반쪽’인 듯합니다."

 

저는 이것을 균형과 호응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혼자 잘 나지 않은 것이 균형이겠지요. 축구나 농구같은 스포츠도 한 사람만 잘 한다고 팀이 승리를 할 수 없고, 프로 축구팀과 초등학교 축구팀의 경기는 손에 땀을 쥐게하는 박진감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이 균형입니다.

호응은 한자로 부를 호(呼)자와 응할 응(應)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쪽에서 부르면 한쪽에서 응한다는 말이지요. 한 사람의 주장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각에 다른 사람의 생각이 더해져 전체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서로 같은 방향일 수도 있고 서로 다른 방향일 수도 있습니다. 서예에서는 이것을 배세와 향세라고 합니다. 서로 같은 생각으로 감싸안는 것을 향세라 하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것을 배세라 합니다. 호응은 서로 돕는 협력이라 할 수도 있고 협력을 위한 소통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예의 원리는 중용(中庸)의 철학에서 깨칠 수도 있고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깨칠 수도 있습니다. 서예는 자연스러운 것에서 그 원리가 만들어졌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서예는 매일매일 하지 않더라도 어느날 문득 인격적인 성숙이 이루어질 때 글씨도 발전하는 일이 생기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