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Learning and Loving

6. 틀과 초월 - 배움과 반복 속에서 창조로 나아가기 본문

일상다반사/오늘의 수상(隨想)

6. 틀과 초월 - 배움과 반복 속에서 창조로 나아가기

Dr. Jo 2025. 4. 25. 00:01

 


6장. 틀과 초월 – 배움과 반복 속에서 창조로 나아가기

— 형식은 감옥이 아니라 발판이다 —


어떤 사람은 예술을 배우면 자유를 잃는다고 말한다.
형식 안에 갇히고, 규칙에 묶이고, 틀에 익숙해지면
자신의 ‘창조성’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느낀다.

하지만 실은 정반대다.

진짜 창조는 틀을 넘는 순간에 일어나지만,
그 틀을 모르는 사람은 넘을 수도 없다.

창조는 무(無)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재배열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익숙함은 반복에서 만들어진다.


반복은 단순한 훈련이 아니다

배움의 시작은 언제나 모방이다.
처음에는 그저 따라 한다.
생각 없이 외우고,
흉내내고,
형태를 익힌다.

하지만 반복이 누적되면,
그 안에서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왜 이렇게 되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르고,
‘이건 이렇게도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변형이 시도된다.

이때부터 우리는
단순히 외우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의 문턱에 선 존재가 된다.


틀은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설계하는 도구다

틀은 우리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몸으로 리듬을 익히는 장치다.

운동선수는 기본 자세를 수천 번 반복한다.
예술가는 형식을 따라 명작을 모사한다.
기술자는 기존 모델을 따라 만들고,
음악가는 정해진 스케일 안에서 연습을 반복한다.

그들은 그 형식을 통해
몸에 리듬을 새긴다.
그리고 그 리듬이 완전히 내 것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 틀을 ‘잊고’ 움직일 수 있다.

틀을 버린 것이 아니라,
틀을 넘어선 것이다.


틀을 초월한 사람은 다시 틀을 만든다

창조자는 기존 형식을 부수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는 다른 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새로운 작곡가는 기존 음악 이론을 알고 있고,
새로운 철학자는 고전을 꿰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자는 표준 규격을 내면화한 사람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기존의 흐름을 비틀고,
그 안에 자신만의 질서를 심는다.
그 순간,
틀은 해체가 아니라,
재조립된다.


초월은 ‘거부’가 아니라 ‘흡수’다

우리는 종종 ‘틀을 넘어서라’는 말을
기존 것을 부정하라는 뜻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초월은 거부가 아니다.
그건 오히려 완전한 수용 이후의 선택이다.

틀을 부정한 사람은
새로운 걸 만들지 못한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것도 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월은
기존의 것을 이해하고,
내면화하고,
그 위에 자기만의 틀을 얹는 일이다.


창조는 기존 질서에 대한 새 해석이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창조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
기존의 것을 다른 맥락에서 배열하는 능력,
배운 것을 지우는 게 아니라, 다른 언어로 다시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끊임없이 배운 사람,
지루할 만큼 반복한 사람,
형식을 몸에 새긴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틀을 버리는 게 아니라, 틀 위에 올라서라

창조는 탈출이 아니다.
그건 하나의 언어를 마스터한 뒤
그 언어로 시를 쓰는 것과 같다.

틀을 버리는 게 아니다.
틀 위에 올라서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읽고,
더 자유롭게 연결할 수 있다.


당신 안에 있는 틀은 무엇인가?
그 틀을 얼마나 오래 익혀왔는가?
그리고 이제,
그 틀을 잊을 만큼 자유로워졌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당신만의 틀을 만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