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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오늘의 수상(隨想)

그림을 그리는 것

Dr. Jo 2018. 1. 18. 15:19

제백석에 관한 글을 읽다가 마음에 닿는 문구가 있어 기록을 남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비슷한 것과 비슷하지 않은 것 사이에 있다. 기묘함이 되는 것은, 너무 비슷하면 세속에 영합하는 것이요. 너무 비슷하지 않으면 세상을 속이는 것이다."

 

作畵, 在似與不似之間. 爲妙, 太似爲媚俗. 不似爲欺世.

 

 

제백석의 말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비슷한 것과 비슷하지 않은 것 사이에 있다"는 말이 말장난 같기도 하고 모호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의미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뒤에 설명한 문장을 보자.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 비슷하면 세속에 영입하는 것'이라는 말은 적당히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보장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의 평을 벗어나 자신의 예술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면 똑같이 따라 그리지 않을 것이다. 유럽에서 인상주의 이후의 의미있는 화가들은 똑같이 배껴내려 하지는 않았던 사람들이다. 물론 그 시대에도 유행에 틈타 묻어가는 화가들도 당연히 많았을 테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 비슷하지 않으면 세상을 속이는 것'이란 말은 아무런 본질도 담겨있지 않은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고 현대미술이다 주장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너는 모르잖아" "이게 예술이야" 라고 세상을 속이는 것이다. 물론 뛰어난 예술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테다. 뒷 문장을 생각해 보고 앞의 문장을 보면 좀 명확해진다. '비슷한 것과 비슷하지 않은 것'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게 보이면서도 본질을 담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르네 마그리트의 "Ceci n'est pas une pipe."와 같지 않은가! 뒤샹은 파이프를 그리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한다. 파이프를 그렸지만 저 그림으로 담배를 피울 수 없다. 본질은 회화미술품이다. 본질은 파이프가 아니라는 말이다. 요즘 현대미술은 정의내기리가 어렵다. 그 사람의 정신세계나 기법 등의 부가적인 정보가 없으면 이해를 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구글의 Google Art Project에 'What is Contemporary Art?'라는 제목의 테마가 따로 있을까. '본질을 담고 있으면서 본질과 다르게 보이는 것'이 '비슷한 것과 비슷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본질은 다른 것인데 비슷하게 보이는 것을 우리는 사이비라고 부른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철학적 사유, 아름다움을 위한 추구(구도나 색상 등의 계획), 감정의 예측된 표현 같은 것들이 없이 기분 내키는대로 물감을 뿌려댄다면 그것은 기묘함을 이룬 그림이라 하지 못할 것이다.

 

 

 

 

 

 

 

 

요즘 캘리그래피가 유행이다. 서점에 가면 캘리그래피 책이 끝도없이 쏟아져 나와서 갈 때마다 새로운 책이 보인다. 캘리그래피가 무엇이길래. 캘리그래피는 영어로 쓰면 Calligraphy, 사전을 찾아봐도 그냥 아름답게 쓴 글이라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옛날부터 서예(書藝)라고 했다. 같은 말인데 요즘 캘리그래피와 서예는 다르다. 요즘 캘리그래피는 붓을 사용하지 않고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붓을 사용하지 않는 캘리그래피는 표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금은 논외로 핮다. 내 관점에서 보면 서예는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너무 비슷하여 셋속에 영합하는 것'이고 캘리그래피는 틀을 너무 지키지 않아서 '너무 비슷하지 않아 세상을 속이는 것'으로 구분이 된다. 제백석이 말한 묘한 그림그리기의 수준을 이룬 사람도 많지만 전반적으로 앞서 말한 것처럼 편향된 경우가 많다. 서예하는 사람들은 임서라고 하는 따라쓰기를 오랜 시간 하게 되면서 무의식 중에 그 속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서예를 하지 않는 사람이 보았을 때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을 정도로 정형적이다. 반면에 캘리그래피를 하는 사람은 자유롭게 시작을 해서 붓을 자유롭게 다루지도 못해도 감정과 표현만 넘쳐난다. 그러다 보니 글자의 형태가 왜곡이 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서예나 캘리그래피나 결국 문자를 표현하는 것이고 문자는 의미를 기록하는 약속된 기호인데 개인마다 다르게 그 형태를 왜곡을 한다면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제백석이 말한 '세상을 속이는 것'이고 '사이비'다. 잠깐 세상을 속일 수는 있지만 누군가는 알게 된다. 최소한 자기 스스로는 알고 있는 것이다.

 

후가쿠 36경을 그린 일본의 유명한 화가 카즈시카 호쿠사이는 "73세에 이르러 나무와 식물들이나 새, 동물, 곤충이나 물고기의 구조에 대한 통찰력을 다소 지니게 되었다."라고 했다. 나는 아직 붓을 다루는 것도 부족하고 대상을 이해하는 눈과 머리도 부족하고 정신적 성장도 부족한 상태에서 무작정 선을 긋고 색을 입힌 세상을 속이는 것은 아닌가 항상 조심스럽다. "눈은 높으나 손은 낮다"(眼高手卑)고 하였는데 정말 눈이 높은지 걱정이고 손은 아직도 낮은지 불안하다. 항상 공부하여 눈을 높이고 연습해서 손을 높이기 위해 마음에 새겨야 할 말들이다.

참... 정말 어렵구나...

 

 

 

 

 

* 'What is Contemporary Art?'(https://www.google.com/culturalinstitute/beta/project/contemporary-art)

 

* 제백석(齊白石)

 

중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1800년대와 1900년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그림, 전각, 서예(특히 전서)로 유명하다.

 

 

* 사이비(似而非)의 유래

 

사이비는 공자(公子)의 말에서 유래(由來)했다. 만장(萬章)이 그의 스승 맹자(孟子)에게 물었다. 「온 고을이 다 그를 향원(鄕原:점잖은 사람)이라고 하면 어디를 가나 향원일 터인데 공자(孔子)께서 덕(德)의 도적이라고 하신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맹자(孟子)가 대답(對答)했다. 「비난(非難)을 하려 해도 비난(非難)할 것이 없고 공격(功擊)을 하려 해도 공격(功擊)할 것이 없다. 시대(時代)의 흐름에 함께 휩쓸리며 더러운 세상(世上)과 호흡을 같이 하여 그의 태도(態度)는 충실하고 신의가 있는 것 같으며 그의 행동(行動)은 청렴하고 결백한 것 같다. 모든 사람들도 그를 좋아하고 그 자신도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는 함께 참다운 성현의 길로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덕의 도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공자(孔子)는 말씀하셨다. 「나는 같고도 아닌 것(似而非)을 미워한다.」라고. 즉, 그들은 꼬집어 비난(非難)할 구석이 없으며 언뜻 보기에는 청렴결백한 군자(君子)와 같으나, 실인즉 오직 세속에 빌붙어서 사람들을 감복케 하고, 칭찬(稱讚)을 받으며, 자신도 만족(滿足)한 삶을 누리는 것뿐 결코 성인(聖人)의 도를 행할 수 있는 인물(人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이들이야말로 '덕의 적'이라 하고 세상(世上)의 사이비한 인간(人間)을 미워한다. 돌피는 잡초에 불과하나 벼포기와 비슷한 까닭으로 더욱 성가시다. 수작이 능한 자를 미워함은 정의를 혼란(混亂)케 만드는 때문이요, 鄭(정)나라의 음악(音樂)을 미워함은 그것이 아악과 비슷한 관계(關係)로 향원을 증오하는 까닭은 그들이 덕을 어지럽게 한다는 데 있다고 갈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