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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독서의 흔적

언어의 온도

Dr. Jo 2018. 1. 15. 15:59

이기주, 언어의 온도

 

 - 2018. 1. 15 -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pp. 17~19

 

"할머니는 내가 아픈걸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와 끔찍함을.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상처가 보이면 남보다 재빨리 알아챈다. 상처가 남긴 흉터를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할머니의 말씀이 따뜻하고 슬프다.

그런데 아픈 경험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자신의 아픈 경험이 다른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작가와 내가 생각이 다른 부분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아프지 않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말도 의술이 될 수 있을까"

pp. 20~22

 

한 번은 나이 지긋한 의사가 회진차 병실에 들어왔는데 그는 팔순을 훌쩍 넘긴 환자를 대할 때도 "환자" 혹은 "어르신"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박 원사님" "김 여사님" 하고 인사를 건넸다.


"환자에서 환(患)이 아플 '환'이잖아요. 자꾸 환자라고 하면 더 아파요."

""게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호칭 싫어하는 분도 많아요. 그래서 은퇴 전 직함을 불러드리죠. 그러면 병마와 싸우려는 의지를 더 굳게 다지시는 것 같아요. 건강하게 일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가슴 한쪽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병원에서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의술(醫術)이 될 수도 있어요."


말이 이미지를 만든다. "나는 바보야."라고 나를 바보의 이미지에 대입을 하면 나는 바보처럼 행동하기 쉬운 것 처럼. 노인, 환자 이런 말들은 활동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은 이미지다. 그런 말을 많이 들으면 더 아파지고 더 많이 늙어지게 된다. 내 아버지는 조카가 생겨서 할아버지 소리를 들으면서 급격히 늙어지셨다.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세상의 아버지는 참 힘들겠다. 자기 나이를 생각해 볼 틈도 없이 가족을 건사하느라, 회사에서 자기 자리를 유지하느라 바쁘다. 아버지는 자기의 나이에 따라 늙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성장을 보고 한번에 늙는 것이다. 자식이 생겼을 때 젊은 아빠로 시작할 때는 한창 에너지도 넘치고 기쁜 상태로 시작을 한다. 자식이 학교를 가면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아기 아빠를 벗어난 나이가 된다. 아이가 대학교를 가면 자식을 품에서 내보내야 하는 나이가 되고 육체적인 힘도 자식을 이기지 못하는 나이가 된다. 자식이 결혼을 하면 좀 더 큰 가족 속에서 곧 한 세대를 넘어가는 가족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나이가 된다. 그리고 자식이 아이를 가지면 할아버지가 된다.

내 아버지는 칠순의 연세에 아직 경제활동을 하신다. 아버지 주위 친구분들이 부럽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고 한다. 경제적인 문제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 분들의 마음이 그게 아닌 것이다. 사회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무언가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이 그 분들의 마음에 부러움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통장에 돈을 쓰기만 하면서 여행을 다니면 물론 편하고 좋겠지만 어느 슬픈 날 "내가 쓸모가 없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래서 아버지들이 직장에서 힘을 잃거나 퇴직하시면 유치하게 혹은 쪼잔하게 변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던 아이를 키워놨더니 이제 지가 잘났다고 날 무시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은 변명하지 않는다"

pp. 23~25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할머니 옆에서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제법 시끄러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손등에 살포시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여보 사람들 많으니까 이어폰 끼고 보세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아, 맞다. 알았어요. 당신 말 들을게요."라고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당신 말 들을게요."라는 어르신의 한마디가 내 귀에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오."라는 문장으로 들렸다.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사랑이란 개념에 대해 작가와 생각이 다른 것을 느낀다.

사랑은 그 사람 그대로를 보고 그대로를 아끼고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상대를 바꾸려고, 내가 원하는 틀 안에 넣으려고 하는 것은 틀 밖으로 나가기 위한 빈틈을 찾게 된다. 부부간의 사랑도,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보 사람들 많으니까 이어폰 끼고 보세요."라고 할 때 할아버지의 손등에 살포시 손을 얹은 할머니의 행동에서 "나는 당신이 그렇게 시끄럽게 뉴스를 봐도 좋은데 다른 사람들한테 눈총을 받을까 걱정이 되요.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그런 대접을 받지 않는 것이 좋아요."라는 말이 숨어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틈 그리고 튼튼함"

pp. 27~28

 

"이런 탑을 만들 땐 묘한 틈을 줘야 해."

"그래, 탑이 너무 빡빡하거나 오밀조밀하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폭삭 내려앉아. 어디 탑만 그렇겠나. 뭐든 틈이 있어야 튼튼한 법이지."


틈은 중요하다. 어쩌면 채우고 메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지 모르겠다.


예전에 어디서 보고 적었던 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아직 채울 수 있는 빈 틈이 있다는 건 넘치는 것보다 행복하리."

내 마음 속에 화가 차오르는데 빈 틈이 없으면 빠져나가지 못하는 화기로 압력이 높아진다. 그게 스트레스다. 스트레스가 얼굴에 차면 얼굴에 뾰루지 같은 것들이 생기고 스트레스가 가슴에 차면 기침을 한다. 속에서 자꾸 밖으로 나오려 하다보니 자연스럽지 못한 곳으로 튀어 나오는 것이다. 사람도 너무 빡빡하게 가두면 이상한 쪽으로 엇나가려 한다. 삐딱해 지는 것이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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