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Learning and Loving

미완성 예찬 본문

예술/미술

미완성 예찬

Dr. Jo 2017. 3. 17. 16:35

세상에는버릴 것도 많고

챙길 것도 있지만

아직 채울 수 있는

빈 속이 있다는 건

넘치는 것 보다도 행복하리



오래 전 어디선가 본 문장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모두 무언가 더 가지고 더 채우려고 아둥바둥 하는데

때로는 부족한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어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란 텔레비젼 드라마를 보는데 이런 대사가 나오더군요.

이만술 역을 맡은 신구 할아버지가 아들과 산에 올라 했던 대사입니다.

"(산은) 올라오면 다시 내려가야만 한다. 끝까지 오를 순 없는거야"


올라가면 내려오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듯 합니다.

주역에서도 "亢龍有悔(항룡유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 높이 올라간 용은 내려올 수 밖에 없기에 후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계영기원 여이동사(戒盈祈願 與爾同死)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

상도에서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이 가지고 있었다는 계영배에 새겨진 문구입니다.

술잔의 70% 이상을 채우면 밑으로 흘러내려 30%는 채울 수 없게 만든 잔입니다.

과욕을 경계할 것을 새기기 위한 잔입니다.

가득 차면 넘치는게 다음 일 인가 봅니다.


나이 마흔이 넘고 보니 높고, 가득차고, 완성된 것 보다

높지 않고, 부족하고, 미완성인 것이 더 마음에 닿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림도 완성되지 않은 그림들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유디트II를 위한 습작(Study for Judith II, 1908)입니다.

왼쪽 아래에 조그맣게 전체를 먼저 그려보고 크게 그렸나 봅니다.

유디트를 위한 습작을 보면 그림은 크게 검은 색으로 이루어진 덩어리(머리카락과 드레스), 피부를 표현한 밝은 덩어리(얼굴, 어깨, 가슴 위 쇄골 부위), 그리고 두 덩어리를 감싸고 도는 붉은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검은 색 덩어리 속에서 피부는 더욱 깨끗하게 대비되어 여인의 순수한 느낌을 살렸습니다.

그리고 가슴에서 시작되어 드레스를 타고 흐르는 붉은 색으로 여인의 또다른 열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래의 황금 빛으로 화려한 유디트(Judith I, 1901)와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배경도 없고, 발 부분은 채색도 되지 않고, 연필선도 그대로 남은 이 그림 속 여인이 더욱 매력적인 것은 완성되지 않은 완성 직전의 여유가 가지는 미덕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완성의 미덕은 세잔(Paul Cezanne)의 그림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진실이란 것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색채만이 그 진실을 표현할 수 있다. 색채는 이 세계의 뿌리이다"

위의 문장에서 보이듯 세잔은 색채를 통해 순간의 표현을 추구한 화가입니다.

그런 세잔의 작품 중에서 물병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Water Jug, 1893)은 색채를 다 입히지 못한 미완성의 작품이지만 채워지지 않은 공간들 때문에 화면의 반도 되지 않는 색채가 더욱 강렬하게 보여 집니다.


 




클림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에곤쉴레(Egon Schiele)의 그림들 중에는 미완성인 듯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크루마우의 오래된 집들(Old Houses in Krumau, 1914)은 색이 채워지지 않은 부분들 때문에 더욱 아련하고 한적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색이 다 채워지지 않은 미완성...

어찌 보면 부족해 보이는 빈 공간들이 있기에 채워진 공간들이 더욱 아름답게 빛나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아둥바둥 사는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채우고 가지려 하는지

가득찬 수많은 것들 때문에 소중한 것들이 눈에 띄지 않고 먼지 속에 방치되지 않는지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술 >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가의 허니문 - 프레드릭 레이턴  (2) 2018.02.09
카즈시카 호쿠사이  (0) 2018.01.16
구스타프 클림트 - 베토벤 프리즈  (0) 2017.03.17
에드바르 뭉크 - 절규  (0) 2017.03.17
툴루즈 로트렉 - 숙취  (0) 2017.03.17